(2015) 떠나기 전, 근거 없는 호기로움
영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멀지만 말이 통하는 곳. 미국을 제외하니 영국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일본도, 미국도 곧잘 돌아다녔다. 아주 낯선 언어를 쓰는 곳도 아니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힘입어 출발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비행기 티켓을 샀다.
티켓을 손에 쥐고도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겠냐며 호기를 부렸다. 1주일이 채 남지 않자 슬슬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여정이 정해지지 않으면 숙소도 정할 수 없다는 것. 촘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 지역은 돌아보겠다, 는 그림 정도는 그려야 어디든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때부터 퇴근 후 새벽녘까지 지도에 동선을 그려가며 찾았다. 들여다 볼 수록 암담했다. 이러다가 정말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통장 잔고가 견딜 수 있는 숙소다. 영국 물가는 말도 안되게 비쌌고, 그 중 런던 숙박비는 무시무시했다(!!).
원래 이렇게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여정을 짜고 이끄는 것은 내 쪽이었다. 오히려 계획 없이 무언가 하는 것을 꺼려했다. 공부도, 인생도 계획 하에 착착 진행해야 직성에 풀렸다. 이런 나를 바꾼 건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혹독한 경험과 항상 계획하고 결정해야 하는 직업이다. 계획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일상에서 계획이 늘어날 수록, 여행에서의 계획이 줄었다. 그 정점에 충동이 이끈 이번 영국 여행이 있다.
성수기가 아니었음에도 성수기에 버금가는 비용을 들였지만 쇼핑은 커녕 제대로 먹고 자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영국은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것 외에는 그 흔한 축구팀조차 몰랐기에 놓치고 온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충동적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골목이 나오면 방향을 틀어 막다른 골목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날 아침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성은 돌아오는 날까지 그리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분명, 바다를 보러 갔다(Coming soon)여행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무계획으로 집 떠나 고생한 여행이지만 안전하게 돌아와 5개월이 지난 지금, 따뜻한 집에서 사진을 보며 기억의 퍼즐을 맞출 수 있으니. 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힘들어지는 현실의 벽에 스크래치라도 낼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위한 자신감 충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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