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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이 마음으로 쏟아지던 밤

시절인연이 마음으로 쏟아지던 밤
– 동행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반야봉-피아골을 걷다

화엄사를 거쳐 오를까 하다 구례에서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덥히곤 성삼재까지 차로 수월하게 오른다. 얕은 눈이 쌓인 길을 자박자박 걸어 닿은 노고단(老姑壇)에서 미세먼지가 띠를 두른 하늘 사이로 길게 뻗은 능선들을 내려본다. 안내판의 모양을 따라 천왕봉, 촛대봉, 반야봉 정도를 지레 짐작하는 나는, 동행의 손가락을 따라 반야봉부터 전라남도 구례와 경상남도 하동을 가로지르는 불무장등(不無長嶝) 능선과 영신봉에서 삼신봉까지 뻗은 하동과 산청 사이의 남부 능선을 겨우 분간해낸다. 그저 보면 이름 모를 첩첩산중 사이에 사람들이 자리잡아 마을이 되었다.


둘러 왔는데도 2시간을 채 걷지 않았다. 대피소 앞 할미상이 우리를 반긴다. 노고단은 도교의 국모신인 서술성모(西述聖母) 혹은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 ‘할미’에게 산제를 모셨다는 할미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천왕봉 기슭에서, 고려 시대에는 이 곳에서, 조선 시대에는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종석대 기슭으로 할미단을 옮겨 산제를 지냈다*고도 하는데 천신의 딸인 성모 마고가 박혁거세의 어머니인지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인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할미는 푸근한 날씨만큼 그저 넉넉하게 웃고 있다.

해가 저물지 않은 시각, 대피소 취사장 한 켠에서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냄비에 물을 끓인다. 그간 해를 따라 홀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산행과는 사뭇 다르게 무척 느슨한 하루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선 동행과의 성긴 대화 사이로 먹을거리를 입 속으로 밀어넣는다.적당히 배를 채우고 무리지어 점점 소리를 높여 떠드는 산객들을 피해 취사장을 나섰다.

이튿날 느지막한 오전에 곧장 내려가려던 계획을 틀어, 아마도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운무가 가득한 새벽길을 걸어 반야봉을 향한다. 노고단 고개를 오르는 길, 불규칙한 호흡이 쉬이 고르게 되지 않음에도 혹여 앞장선 나 때문에 뒤쳐질까 평소보다 속도를 높였다. 한참을 조용히 뒤따르던 동행이 나지막이 걸음이 빠르다는 얘기를 건네자 나는 그제야 실토한다. 앞에 서면 뒤를 쫓아오니 속도를 높이고, 뒤에 서면 뒤쳐질까 속도를 내게 된다고, 이런 대화가 없었다면 아마 서로를 오해하며 줄곧 힘을 뺐을 거라며 웃었다.

종주 능선에서 약간 벗어나 오르내려야 하는 반야봉은 애써 지나치기 일쑤였다. 노루가 다니는 길목이라는 노루목에서 1km라고 하지만 같은 거리의 삼도봉 혹은 임걸령까지 수월한 길이 이어진 반면, 반야봉까지 200m 고도가 넘는 가파르게 오르내리고 나면 힘이 쑥 빠져 나아갈 길이 아득해진다.

가파른 오름 앞에서 무릎이 좋지 않은 둘은 각자 여력에 맞춰 행선지를 수정한다. 추위에 손을 쥐락펴락하며 반야봉으로 향하려는 나에게 큰 장갑을 쥐어준 동행은 천천히 하산길로 먼저 향했다. 마침 내려갈 일 밖에 없는 일정의 호사로 천천히 오른다. 기후 변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고유 상록 침엽수인 구상나무의 집단고사 현장을 스치며 일개의 사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에 안타까움만 깊어진다.

깨달음을 통해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라는 이름을 가진 반야봉에는 마고 할미와 도사 반야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시에 한국전쟁 때 양민 학살, 촌락 방화, 산림 남벌 등 상처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 내내 대피소 취사장에서 금지된 술을 마셔가며 떠들썩하던 산객 무리로 추정되는 이들이 출입금지 표지를 넘어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해먹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을 자신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면 저렇게 함부로 할까. 통제와 규제로 산길을 막는다고 하지만, 들어가지 말고 하지말라는 글은 글로 보지도 않고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를 남기는 사람들에게 그마저도 내어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 잔뜩 올라 선 반야봉에는 무심히 싸락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다 해가 잠깐 나고 다시 눈이 왔다.

카메라와 함께 산을 오르니 동행이 있어 생기는 불편함이 싫어 대부분 혼자 길을 걷는다. 개의치 말라고 해도 배려하는 상대의 눈치를 보다 결국 보조 맞춰 걸어야 했던 날은 스쳐 지나온 풍경을 담지 못한 미련으로 며칠을 툴툴거렸다. 그런 나는 카메라를 들 시간이 거의 없었던 이번 산행이, 아마도 좀처럼, 아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걸음걸음이 아쉽다.


동경(憧憬)
흔히 겪어 보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우러르는 마음으로 그리워하여 간절히 생각함
–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사전을 뒤적여 복잡하게 얽힌 생각과 기분의 실마리를 겨우 찾아낸다. 동경. 나는 그를 동경했고, 동경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중첩된 우연으로 알게 된 동행의 웃음은 과장되지 않았고, 말은 신중했다. 산과 삶에 대한 나의 생각과 시선과 비슷하거나 한층 성숙한 모습에 한껏 신이 나 한참을 떠들고는 앞으로도 잘 부탁하다는 인사로 돌아서는 나에게 그는 서로에게 부탁할 것도, 부탁 받을 것도 없다며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들었다. 그는 가지고 얽매려 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초연해 보였다.

무언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불꽃처럼 화르륵 이는 나의 마음이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수차례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였다. 내가 아닌 상황과 대상에 무심하려 애썼고 ‘욕심’의 대상을 나로 향하게 마음을 부여잡았다.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던 산행에 아쉬움이 깊어지고, 흘러가는 시간과 잡히지 않는 마음에 잊고 있던 무용한 욕심이 인다.

모든 게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며 최선을 다하고, 다시금 연이 닿은 날에 진심을 다해 마주하고 즐거움을 나누자고 되뇌어온 스스로의 말이 위선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순간순간 존재하지 못하고 미련하게 지나간 어제를 움켜쥔 채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다음에 또 봐요, 오래도록 봅시다, 와 같은 공허한 말을 허락하지 않은 시간의 여운이 짙게 내려앉는다. 즐거움이 클 수록 밀려오는 지난한 허무와 외로움의 무게가 버겁다.


생은 유한하기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나와는 다른 사람일 수도, 혹은 마음의 크기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산정에 들어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고, 서툰 단어로 풀어내며 조각난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생의 어느 접점에서 만날지 알 길이 없다. 성급히 일방을 몰아세우지 않고 서로의 시간에서 서서히 조금씩 머무를 수 있는 인연이 이어지면 더없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는 것 밖에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소등 시간 전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가 그를 바라본 순간이 맞지 않아 그렇게 고한 밤이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다시 스치지 못할 사람, 빛, 풍경을 떠올린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감각이 없어지면서도 담고싶었던 별들이, 소중한 시절인연들이, 지리산의 밤하늘에서 마음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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