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소시지와 축구, 뜨거웠던 그날 밤
“으아아아아”
텅 빈 거리 구석구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와 탄식이 들린다. 스크린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였다. 연두색 잔디에서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캐리어를 드륵이며 무심히 지나갔다.
배가 고팠다. 해가 긴 유럽의 여름은 눈은 속일지언정 배는 속이지 못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서 먹은 첫 끼가 켄터키 할아버지일 수는 없었다.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으로 황량한 거리를 탐색했다.
‘끼니’에의 집착은 늘 존재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무쳤던 건 작년 영국 여행이다. 마땅히 먹을 게 없다는 말에 바게트 샌드위치로 연명하다 결국 배고픔에 쌓인 ‘악’이 폭발했다. 스테이크를 입 안에 밀어넣고서야 안정을 찾았다. 누적된 허기와 욕구 불만은 이어지는 여정에 치명타라는 교훈으로, 혼자든 여럿이든 끼니는 거르지 않겠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갈림길이다. 지나온 길은 왼쪽이다. 꽤 큰 역 앞에 소시지 간판을 본 기억이다. 오른쪽을 택한다. 지하철 역 인근에 레스토랑 하나쯤 있을 법 했다. 다행히도 그랬다.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로 짐작되는 메뉴를 주문했다. 소시지에 카레 가루와 케첩을 섞은 소스를 끼얹은 커리부어스트는 전후 빈곤과 물자 부족, 새로운 음식을 향한 갈망이 섞여 탄생한 거리 음식이다. 버젓한 고기 한 덩이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절망과 빈곤 속에서 우연과 재치로 발견한 맛의 변형은 지금까지도 베를린의 대표 음식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소시지로 나이프와 포크가 돌진한다. 한국에서 흔한 크기의 소시지 3-4개를 묶어 놓은 듯한 굵기다. 베어 문 순간 외마디 소리가 새어나온다.
짜다.
너무도 짜다.
당장의 허기를 채워줄 유일한 음식 앞에 실망보다 당혹감이 앞선다. 수북한 감자튀김을 집고 맥주를 들이킨다. 맥주가 달랜 입 안에 다시 한 번 기대와 희망으로 소시지를 밀어 넣은 순간 자동반사적으로 맥주 잔에 손이 간다. 음식이 짠 탓에 맥주 소비가 많은 건지, 맥주 소비를 늘리려 음식을 짜게 한 건지, 소시지와 맥주를 두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실없는 논쟁이 머릿속을 스친다.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둔 조용한 칼부림이 벌어지고 동안, 레스토랑의 시선은 초록 위의 전투에 고정되었다. 전사들의 움직임에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가까스로 당도한 적의 문 앞에서 좌절한다. 스크린 안팎의 관중도 좌절한다. 고조의 순간순간이 지날 때마다 여기저기 맥주를 찾는 떨리는 손이 고개를 든다.
소시지 너머 한 마음으로 시선 고정
승부차기다. 연장전으로도 갈리지 않은 승패는 한 사람의 발길질에 달려있다. 한 번, 두 번, 어느새 독일 관중과 나의 심장은 같은 속도로 뛴다. 입 안이 바짝 마른다. 14년 전 마지막으로 본 축구와 흡사하다. 몇몇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을 가린다.
자정이 넘은 거리에서 축포가 터졌다. 멀리서 그릇이 깨지고 함성이 들린다. 행인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성으로 늦은 밤 인사를 건넨다.
전쟁 이후 독일에서는 국기를 내거는 것만으로 비난 받았다. 민족주의와 집단주의를 자극하거나 표현하는 행위 일체를 경계했다. 그래서 붉은 악마의 물결이 전국민을 뜨겁게 달군 2002년 한일 월드컵만큼이나 2006년 독일 월드컵은 특별했다. 자국에서 열리는 전세계인의 축제, 그것도 축구 대회에 사람들은 하나 둘 국기를 걸고 둘렀다.
10년이 지난 지금, 밤거리에는 독일을 향한 환호성이 넘쳐난다. 무뚝뚝하고 차가울 거라 생각한 독일의 밤은 아침까지도 뜨거웠다. 축구에 대한 열정 이면에 훌리건과 네오 나치 등 위험한 문제도 도사리고 있지만, 두 손을 꼭 쥐고 함께 환호했던 순수하리만큼 뜨거웠던 밤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경기 후 들뜬 걸음으로 귀가하는 행인들
(아마도) 뜨거운 밤의 흔적
+ 분단 당시 독일의 경계. 연두색은 서독 영역의 베를린. 동독으로 둘러싸인 베를린은 물자나 자원이 이동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랐다.
출처: Wikipedia
+ 베를린에 커리부어스트 박물관이 있다고. 자세한 정보는 http://currywurstmuseum.com/en/ 에서 확인.
+ 커리부어스트 탄생에 대해서는 어느 음식이나 마찬가지로 원조 논란이 있지만, 베를린 1949년 Herta Heuwer 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 More info @ The Wall Street Journal, NPR. (WSJ 기사에는 추천 식당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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