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오르고자연과 더불어

말과 행동의 무게를 안다면

말과 행동의 무게를 안다면
– 모순과 위선을 스스럼없이, 자랑처럼 보일 수 있을까 – 산을 이용하는 ‘인플루언서’들을 보며

 

좋은 것을 두고 양가감정이 든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가도 나만 알고 있고 싶다. 군집과 소란을 싫어하니 애초에 나눔의 대상도 몹시 제한적이다. 무질서가 본성이라면, 질서가 사회화되었어야 함에도 사람이 모이면 그저 소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더러워진다. 그래서 점점 좋은 것, 좋은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게 싫다. 자연일수록 더욱 그렇다.

보이고 관심 받고자 하는 것도 본성이기에, 이미지와 몇 줄의 텍스트로 편집된 자신을 보이기 쉬운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진, 자연, 책 정도의 관심사에 걸리는 포스팅만 해도 하루 수십, 수백이다. 대부분 이러하다, 이러했다는 행위와 사고의 결과물인데, 종종 무언가를 권유할 때는 그 동기를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할 행위의 근본 원칙에 대한 의무론은 나의 이상이다. 많은 이가 어떠한 목적, 특히 개인의 행복과 쾌락이라는 목적이 행위로 이어진다는 목적론이 더 현실에 가까운 것 같다. 보여주는 행위에는 관심이라는 목적이 있다면, 권유에는 그러한 관심에 행동이나 인식의 변화가 더해진 것이라 짐작된다.

물품, 서비스를 권하는 광고, 홍보 활동은 구매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좋은 것, 특히 자연, 산을 그저 권하는 행위의 동기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산을 권하고 정보를 기꺼이 공유해준 포스팅들 덕에 늘 이것저것 배우고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자연을 마주할 때의 태도나 인식 변화라면 모를까, 자연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라든지, 그저 한번 떠나 보라는 권유는 그 목적이 모호해 종종 의구심이 든다. 좋은 걸 함께하자는, 순수한 박애주의적 동기라면 그런 배포와 아량에 미치지 않는 나를 돌아보게 되지만, 많은 경우 한 꺼풀 벗기면 무언가를 팔거나, 파는 걸 알리거나, 그러한 행위로 자신의 명성을 쌓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그 목적을 언어적으로든, 비언어적으로든 뚜렷하게 드러내고 인정하는 편이 신뢰가 간다. 소위 말하는 한 ‘인플루언서’의 계정에는 그간 대체로 어디를 어떻게, 무엇을 입고 다녀왔다, 좋았다, 가보라는 정도의 포스팅이었는데, 최근 언론 매체에서 ‘더 나은 산행 문화 정착’이라는 목적을 얘기한 걸 보며 적잖이 당혹감이 들었다. 결국 산을 이용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 – 직업이든, 비즈니스든- 이 있었던 것 같은데 대의명분으로 포장되니, 자연을 마주하는 행동이나 인식 변화를 위해 크고 작게 말과 행동으로 이를 행하던 주변의 노력과는 사뭇 대조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진정성은 뚜렷한 목표와 행동에도 쉬이 얻기 힘들다. 해석은 듣고 보는 이의 몫이나, 당초의 의도나 목적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화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일이지 싶다. 많은 것이 넘쳐나고 휘발되어 맥락을 보려는 이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진정성은 몇 마디 말과 이미지가 아니라 이어져온 맥락에 기반한다고 나는 믿는다.

말과 행동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만 알아도, 개인적인 욕망을 대의명분으로 포장하는 위선과 모순을 자랑스레 내세울 수 있을까. 누구나, 언제나 옳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혹은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있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좋다, 심지어는 옳다, 바르다는 기준마저 절대적이지 않으니 나의 해석이나 기분이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옳은 일조차 강제할 수 없고 그저 북돋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행위의 선택이 나를, 우리를, 세상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답답한 마음을 서툰 언어로 옮겨본다.

덧 1. 산에 무엇을 입고 가져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다만, 평지가 아닌 오르내리막이 있는 곳에서 특정 복장으로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면 쓸데없는 간섭, 오래된 사고방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또한 배려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싶다.

이 역시 자연, 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 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자연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섣불리 예측하기보다 대비하는 쪽이어야 하는데, 간편한 복장에 물, 행동식 정도로만 종일 거리를 달리는 이들을 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비나 바람을 자주 만나고 가끔이지만 탐방로가 잘 나 있는 국립공원에서도 길을 잃기도 해, 기본 안전 장비는 도무지 뺄 수 없는 나에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자연에 대한 오만과 보여주기 위한 무모함이 나는 물론, 주변과 타인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자연을 접하는 이들이, 특히 많은 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위치라면, 설령 그것이 자신을 향한 이야기일지라도 그저 내가 좋고 대단한 것에 그치지 않고 안전, 자연과 타인에 대한 예의와 상식 (소음, 쓰레기, 지정된 시간/장소 외의 산행이나 비박, 야영, 취사와 같은 불법행위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좀더 많은 사람이 그래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고, 심지어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왜’라는 반응을 직접 듣기도 했지만, 그건 개인주의도, 자유도 아니고 그저 상식 없고 이기적이고 못난, 민폐일 뿐이다. 스피커며 고성으로 이야기하거나, 들어가지 말라는 데 버젓이 들어가 사진 찍고 밥 먹는 행위를 하는 건 특정 세대나 연령대의 문제도 아니다. (뽕짝이 아니라 EDM은 되느냐는 반응이라니)

덧 2.거친 말은 본질을 흐리기 마련이다. 어느 쪽이든.

#생각 #산행 #자연 #진정한’인플루언서’란

덧 3. 사진은 지리산에서. 천천히 걸어 볼 수 있었던 아름다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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