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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드디어 풀린) 연말의 미스테리

한여름 장마와 더위를 헤치며 다닌 처음을 제하고, 오사카에서의 기억은 연말 풍경이 주를 이룬다. 크리스마스 즈음 도착해 해가 바뀌기 전 귀국하는 일정이라 성대한 축제를 타국에서 만끽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 산타나 캐롤은커녕 대형 백화점이나 번화가에서나 트리를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였다.

밸런타인데이도 둘로 나눠 화이트데이를 만들고 기념하는 나라에 크리스마스가 별 날이 아니라니 별일이다. 예상 외로 차분한 분위기에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닌 영향도 적잖을 것이다. 일본 기독교 신자가 1% 남짓이라고 하니, 국가 차원에서 공휴일로 제정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간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개인 종교가 기념일을 만든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신 현 천황과 전 천황의 생일은 휴일이다.

아, 산타 라이더를 잊고 있었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자들.

이맘때 일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흰 종이, 귤, 풀, 짚으로 만든 장식. 거리마다 가게나 집 현관 위쪽에 걸려있다. 너도나도 매단 데는 분명 의미가 있을 터인데 행인을 잡고 다짜고짜 물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세 번의 조우에도 이름조차 몰랐다.

‘시메카자리’라 하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찾은 녀석의 정체는 시메카자리(注連飾り). 기원에는 정월에 찾아올 풍작의 신 ‘도시가미(年神)’를 맞기 위한 장식이라는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가지 설이 있다. 액운을 쫓고 행운을 비는 시메카자리에는 의미가 숨어있는데, 이 참에 알아두고 여행 중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으로 살펴보자*.

먼저 기본 축을 담당하는 ‘시메나와(注連, 금줄)’는 새끼줄(주로 볏집)에 ‘시데(紙垂)’라는 번개 모양의 흰 종이를 끼운 것. 신성한 장소를 구분하기 위한 줄로, 시메카자리 외에도 신사 밖이나 집 안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길 모퉁이, 건물 사이에 마련된 제단 위에서도 시메나와를 볼 수 있다.

금줄에는 등자귤, 고사리, 새우와 같은 ‘엔기모노(起物: 행운, 길조를 상징하는 물건)’를 단다. 이 중 자주 보이는 등자귤(だいだい,다이다이)은 가문의 ‘대대’손손 번영을, 풀고사리(裏白, 우라지로)는 장수를, 굴거리나무(り葉, 유즈리하)는 자손번영을 뜻한다고. 여기에 복을 부르는 단어가 적힌 나무판을 장식하기도 한다.

시메나와+등자귤+풀고사리+굴거리나무+’쇼몽(笑門)’

시메카자리는 보통 연말에 달았다가 1월 7일에 떼어내 1월 15일 돈도야키(どんどやき: 정월 장식이나 부적을 태우는 향례 행사)’에서 태운다(돈도야키 불에 구운 떡을 먹으면 1년 동안 건강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연말 중에서도 12월 29일은 9와 발음이 같은 ‘고난(苦)’이 연상되고, 12월 31일은 ‘이치야마쓰(一夜松)’라며 정월에 신을 맞이하는 데 하루로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피한다고.

‘쇼가츠(正月)’라 부르는 정월은 ‘도시가미’를 맞이하며 축하하는 기간이다. 예전에는 대보름까지, 지금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7일까지에 해당한다 (아, 일본은 양력 기준이다). 1월 1일부터 3일까지는 ‘산가니치(三が日)’, 7일까지는 ‘마쓰노우치(松の)’/ ‘마쓰시치니치(松七日)’라고 부른다. 이 중 사흘 연휴인 ‘산가니치’는 세배, 떡국, 첫 신사참배(初詣, 하쓰모우데) 등 우리네 음력 설과 닮았다. 7일까지인 ‘마쓰노우치’는 ‘시메카자리’와 함께 현관이나 출입문 옆에 세우는 ‘가도마쓰(門松)’라는 소나무 장식이 서 있는 기간이라는 뜻. 그래서 마쓰노우치 이후에 정월 장식을 떼어다 대보름에 활활 태운다, 라는 이야기.

연말이 아니라도 곳곳에서 신토(神道)의 흔적이 보인다. 신토는 만물에 생명이, 제각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신앙, 조상신이 우리를 굽어 살핀다는 믿음에 불교,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첫 신사참배에는 일본 국민 70% 이상이 참여한다거나, 지역 신을 기리는 축제인 마츠리, 집안의 신단(神棚, 카미다나) 등 신토는 일본인에게 종교 이상의 의미다. 덕분에 경복궁, 인사동과 같이 특정 공간에서 발견되는 우리 문화의 흔적과는 달리, 일상에서 일본 특유의 문화나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교토 거리에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씁쓸하다. 한복을 입어본 게 언제였는지. 온 가족이 두런두런 모여 떡국을 뜨며 덕담을 나누고, 차례가 끝나면 날밤을 먹으러 달려가던 일은 이제 정말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상점과 식당 주인도 고향을 찾아가던 불편한 옛 풍경이 그리운 건 왜일까. 여느 주말과 다름 없이 영화관과 상점에 사람이 북적이는 연휴의 모습이, 365일 깨어있는 우리네 풍경이 괜스레 서글프다.

교토 산넨자카

*<신세계에서>라는 무시무시한(!) 애니메이션의 영향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시메나와’는 주력(마법)을 쓰는 주인공의 마을과 밖을 구분하는 지표 역할. (궁금증을 자극한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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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2015) (드디어 풀린) 연말의 미스테리

  •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포스팅의 퀄리티가 뛰어나서
    금세 빠져들어 버렸네요 ㅎㅎ 앞으로도 여행에 관련된 재미있는 포스팅 많이 남겨주세요~

    서로 왕래하며 글들도 확인하고 소통도 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미세먼지 심한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종종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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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ingN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종종 왕래하며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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