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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자유 여행의 여유, 그리고 천상의 맛 ‘와규’

늦잠이다. 점심께나 되어서야 눈을 떴다. 짜여진 일정이 없는, 어디를 얼마나 다니는지 온전히 여행자에 달려 있는 여행. 자유 여행의 여유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아직도 휴식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서툴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친구라 다행이다. 절반을 바게트를 먹으며 매일 평균 15km를 걸었던 영국 여행담을 듣고는 다들 혀를 내둘렀다. 같이 여행 가면 싸우거나 뻗을 거란다. 그래서 누군가와 여행을 가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있다. 여행의 목적을 파악하는 것. 와이키키 해변을 두고 어머니와 크게 다툰 후 얻은 값진 교훈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먹기’였고, 잘 걷는다는 말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카노시마 역부터 우메다 역까지 걷기로 했다. 나카노시마 역 근처 강변을 따라 키 큰 빌딩이 들어서고 있었다. 두 블록을 넘어가니 분위기가 바뀐다. 우메다 역 근처에 다다르니 공사 중인 건물의 외관이 촘촘하게 천막으로 가려 있다. 행인과 주변에 대한 배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카노시마 역 근처 – 강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하층부 공사 중인 건물과 건물의 일부인 줄 알았던 천막

당일 아침, 아니 점심에 일어나 고베 행을 결정했다. 급하게 유명하다는 와규 스테이크집을 찾아냈다. 1시간 가량 주린 배를 부여잡고 ‘런치 타임’을 향해 달렸지만, 런치 종료까지 10분 남긴 가게 안에 우리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결국 오후 3시 30분, 그들에겐 ‘디너’, 우리에겐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소고기는 고베에서의 와규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고. 와규(和牛)는 일본 토종 소고기. 3대 와규라 꼽히는 고베, 마쓰사카, 요네자와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것이 고베규(神牛). 등심이 100g 당 3500엔인 고베규*를 레스토랑에서 먹기는 큰 마음을 먹고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아 와규 등심과 안심을 선택했다.

둘 앞에 선 셰프는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얇게 썬 마늘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떼어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야채를 구워낸다. ‘하얀 것의 정체는 뭔가요?’ 눈빛은 통했다. 친절한 셰프는 蕪라는 한자를 정성스레 쓰고 표정을 살피더니 大根을 덧붙인다. 순무, 였군요. 그래, 무는 큰 뿌리지.

겉만 살짝 익힌 고기를 가볍게 2등분, 또 2등분한다. 한 입 크기가 된 고기를 접시에 담아준다. 와사비와 후추, 소금은 고기, 소스는 야채에, 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적당한 선홍색을 머금은 와규 한 조각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치아가 채 닿기도 전에 목 뒤로 미끄러진다. 꿈을 꾼 듯 또 한 조각. 감탄사 외 세상의 언어를 잊은 우리를 보는 셰프의 미소는 미륵 보살 같았다.


조심스럽게 고기를 잘라내는 셰프님

셰프는 우리의 먹는 속도에 맞춰 고기를 구워냈다. 지방 조각과 볶은 숙주나물까지, 준비된 요리가 끝나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옆으로 물러갔다. 10분 차이로 2000엔은 더 줘야 하는 디너 코스라며 투덜거릴 틈을 주지 않았다. 천상의 맛 ‘와규’는 셰프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으로 완성됐다.

눈 앞에 있는 고기를 치우듯 구워대는 통에 보조를 맞춘답시고 급하게 먹다 급체로 고생했던 적이 있다. 고기를 먹을 때마저 ‘빨리 빨리’였던 그 때와 사뭇 다른 여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고베의 저녁은 유난히도 여유로웠다.


모리야 (モーリヤ)

  • 위치: 고베 산노미야 역 동쪽 출구 7번으로 나와서 직진. 혹은 서쪽 출구 1번의 건너편.
  • 주 메뉴: 고베규, 와규 철판 스테이크


  • 덧:
    • 메이지 18년(1885년) 본점 영업을 시작한 고베 스테이크 레스토랑
    • 고기를 내온 후 주문한 고기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함까지
    • 런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업은 오후 10시까지 (L.O. 9시)
    •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도 가능 (방문 하루 전에 하는 것을 권장)
    • 옆 테이블에서 먹던 해산물 세트도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 홈페이지: http://mouriya.co.jp/
  • 주소 & 지도: 〒650-0011 兵庫市中央下山手通2丁目117


    ※ 본점 주변으로 モーリヤ 三宮店(모리야 산노미야점), ロイヤルモーリヤ(로얄 모리야)를 운영하고 있다.


* (2015/06/26) 중앙일보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음식 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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