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유럽

(2016) 독일 대중교통 101

오래 전 기억이다. 대도시 생활이 처음이던 친구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3번째라던 친구에게 실내에 들어가니 응당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짓궂은 장난을 담은 사뭇 진지한 표정에 친구는 천천히 신발끈을 풀었다. 사람들이 개찰구에 지갑을 대니 ‘삑-‘ 소리를 내며 통과하는데, 당최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역무원에 삑 소리 나는 걸 달라고 한 친구도 있었다.

지극히 일상적이라 평소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건 공기, 물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대중교통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여행객이 마주하는 ‘나 빼고 다 자연스러운’, 혹은 ‘나에게만 당혹스러운’ 난관이 될 수 있다.

독일 여행을 결정하고 도착할 때까지 아는 독일어라고는 ‘Danke’ 한 마디였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뮌헨을 거치거나 둘러보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운전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동네에 멀쩡한 두 발이면 어디든 못 갈 데가 있으랴. 최악의 상황에서는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 배짱과 용기도 이만하면 자랑할 만 하다.

무작정 떠난 그간 여행의 경험으로 여행안내소나 그 언저리에서 버스표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베를린 테겔(Tegel) 공항에서도 그랬다. 긴 줄 끝에 서서 (그제서야) 호텔이 있는 지역을 검색해 내려야 할 역 이름을 알아냈다.

버스 기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올라타는 승객을 바라본다. 보여줄 곳을 찾지 못한 티켓을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치를 보다 앞 쪽 조그마한 기계에 티켓을 밀어 넣었다. 그제야 지불한 돈의 대가를 확인 받는다.

버스 안 티켓펀칭기(Validator)

세 도시를 넘나들며, 열차를 제외한 지하철, 버스, 트램에서 표 검사는 없었다. 무심결에 스칠 수 있는 작은 기계에 사람들은 양심껏 표를 집어 넣는다. 1일권을 끊고 도시를 여행하는 경우라면 자발적인 표 확인도 고작해야 하루 한 번이다. 시민 의식과 양심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이를 악용해 무임승차로 쾌거를 부르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해볼 일이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곳곳에 숨어 있는 지하철 티켓펀칭기

버스는 비교적 쉬웠다. 우리나라처럼 우리말, 영어, 심지어는 중국어, 일본어를 망라한 친절한 안내 방송은 없었지만, 익숙한 위치의 전광판에 다음 정류장 이름이 뜬다. 익숙한 버튼을 누르면 이내 당도하는 정류장에서 문이 열린다.

당혹스러운 건 지하철이었다. 이튿날 도시 내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다니는 U반(U-Bahn)에 몸을 싣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 방송이 웅얼거리며 스쳤다. 귀를 쫑긋 세워봐야 알아 들을 리 만무하다. 영어만 맹신한 자여, 여긴 독일이다, 라는 비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사실 맹신해도 될 만큼 영어로 의사소통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문이 열리는 횟수를 세며 내릴 곳을 역추적하려 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렸다. 결국 텅 빈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홀로 문 옆에 바짝 섰다. 매 정거장 스릴 있게 차창 밖 이름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가서야 문열림 버튼을 눌러도 된다는 초록불이 들어왔다. 미리 누르지 않아 못 내리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눌러야 열리는’ 시스템은 여행 마지막 날까지 적응하기 힘들었다. 멍하게 있다 정거장을 놓치거나 밖에서 버튼을 누른 사람이 들어올 때 허둥지둥 내리기도 했다.

안이든 밖이든 누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신뢰에 기반한 독일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큰 잡음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부러웠다. 반면, 2개 이상의 언어로 표기하고 방송하는 우리네 시스템이 새삼 무척 편리하고 친절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비용과 필요성 사이의 저울질은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했을 지 궁금해진다. 수십 노선에 영어 방송만 추가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주 잠깐, ‘이건 여기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거야. 알아듣는 건 놀러 온 네 몫’이라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우리말로만 방송이 나오는 지하철을 상상해본다.

한글 다음으로 영어가 흐르는 우리나라 버스 안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새롭다. 이방인으로 바라본 낯선 일상의 시선은 결국 자신의 문화와 사회로 향한다. 옮고 그름, 혹은 선진과 후진의 흑백 논리가 아니라 나와 다른 점을 정성스레 살펴본다면 우리의 좋은 점도, 또 더 나아갈 방향도 보이지 않을까. 나와보니 우리가 가진 좋은 점도 참 많다.


샛노란 U반

눈을 뗄 수 없었던 차창 밖

+ 구간별 1일권 가격은 도시마다 달랐다. 테겔 공항을 포함해 도심 대부분을 다닐 수 있는 베를린 AB 구간 EUR 7.00, 뮌헨 1-2존을 포함한 Munchen XXL은 EUR 8.60 등(2016년 7월 기준). 여정에 맞게 구간을 살펴 선택하자.

개시한 베를린 AB 구간 1일권 (상단에 번호와 시간이 찍힌다)

+ 티켓은 보통 버스정류장이나 역 내 자동판매기에서 살 수 있다. 일부 자판기는 현금으로만 결제할 수 있다. 버스와 트램은 탑승 후에도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고 (Visit Berlin 홈페이지 참고).

+ 중앙역이나 공항역과 같이 외국인 유동 인구가 많을 법한 역에서는 독일어와 영어 방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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